2023. 04. 09., 서울 종로구 동숭길 101.

정이 깊을수록 상심이 크고 아름다운 꿈은 쉽게 깨는 법

연구실 노션 스페이스가 생겼습니다. 있으면 좋겠다고 내가 조른거라 관리에 있어서 약간 나설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실 세미나를 관리할 데이터베이스도 만들고, 회의록 템플릿도 만들었습니다. 액션 아이템을 정리할 칸반 보드도 만들었어요. 아무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고 막 질러두었는데 사람들이 달가워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밤에 급하게 생성해둔 회의록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진행 상황을 빼곡하게 채워두었더라고요. 나의 짧은 진행 상황이 초라해보였습니다.

랩 미팅에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습니다. 잠에서 깨려고 열심히 회의록을 적었습니다. 옆에서 열심히 두다다다 치고 있으면 누가 한번쯤 도와줄법도 한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회의록 템플릿을 만들어두기는 잘한 것 같아요. 확실히 랩 미팅이 체계적으로 변화했습니다. 프로젝트 별로 보고하고, 논의하고, 액션 아이템 잡고. 이런 형태의 미팅이 훨씬 생산적인 것 같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노션에 만들어둔 페이지들 소개를 했는데, 동기 한 분이 제 세미나 덱 템플릿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Marp를 소개해드렸고, 몇몇분들이 괜찮아보인다는 눈빛을 보였습니다.

이제 4명이 된 연구실 학생들끼리 밥을 먹은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동기 분이 콘서트 잘 갔다왔냐고 물어봐서,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자랑을 해버렸어요. 너무 붕방거린게 아닐까 걱정입니다.

나는 ‘뇌내코딩’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무언가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로직들을 머릿속에서 미리 구현해보는 과정을 그렇게 불러요. 뇌내코딩을 할 때 까지는 즐거운데, 이 이후에 컴퓨터를 켜서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이 유난히 귀찮은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꼭 그런 날이었어요. 오늘 랩미팅을 하면서 로직을 수정할 일이 생겼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다 다 생각해두었는데 코딩을 하기가 너무 귀찮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구현을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틀린 로직이더라고요. 청소 시간을 앞두고 있었기에, 내일 다시 생각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주 청소에서 나는 대걸레질 담당이었습니다. 확실히 걸레질이 청소기 돌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대걸레도 빨아야하지, 발자국 안남게 잘 계산해야하지, 바닥으로 누르는 힘도 줘야하지…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저녁은 우유 한 팩으로 때우고 수업 슬라이드를 다시 챙겨봤습니다. 요즘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복습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학부 때 보다 수업을 적게 들으니까 여유가 생긴 탓일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마 분명히 학부 때 분명 배운 내용들인데 다 까먹어버린 탓에서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지 않을까요.

2024. 03. 1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오래간만에 혼자서 러닝을 했습니다. 같이 뛰는 사람이 없으니까 확실히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꽤나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뿌듯했습니다. 러닝 하면서 “Baby Baby”를 들었는데 노래가 제 취향이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일찍 잠에 든 탓에 개운하게 일어났지만, 딥러닝 수업 내내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꽤 중요한 파트였기 때문에 잘 들었어야했는데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혼자서 공부해봐야죠 뭐 어쩌겠어.

2교시 수업을 앞두고 앞에 조교님이 서 있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과잠을 입은 교수님이었습니다. 최근에 인공지능대학원에서 과잠을 맞췄던데 교수님도 받았나봅니다. 교수님이 너무 동안이세요. 대학원생보다 젊어 보이십니다.

점심 학식을 받고 있는데, 학식 줄 뒤에 서 있던 교환 학생 분이 쌈 채소를 보고 유창하게 “I love 쌈~”이라고 외치는 걸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한식 문화가 외국에 많이 알려지고 있나봐요. — 근데 별개로 학식에 상추, 깻잎, 양배추찜 다 있었어서 아이러브쌈이라고 외칠만 하긴 했습니다.

2024. 03. 1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출근 길에 아기 참새떼를 봤습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방학에는 출근할 때 귀찌를 바꿔가면서 많이 꼈었는데, 학기 시작하고서는 잘 끼지 않았어요. 오늘 기분이 좋아서 오래간만에 꼈는데 다들 예쁘다고 한마디 씩 해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번주에 파이썬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 중 하나가 꼬리재귀에 대한 최적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동아리 디스코드 서버에서도 같은 내용의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동아리원들이 파이썬에서 꼬리재귀를 런타임에서 최적화할 여러 방법들을 구현해와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컬그는 기존에 있던 예외 루틴을 이용하는 방법을 이용했어요. 예외를 이용하는 점에서 “CPython 인터벌 운동 루틴”이라고 이름 붙인 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플은 빌트인 dis 모듈을 이용해서 바이트코드 레벨에서 코드를 변형하는 방법을 구현해왔습니다. 레몬워터는 빌트인 ast 모듈을 이용해서 코드를 변형하는 방법을 구현해왔고요. 그냥 던져본 말에 진심으로 접근하는 이 긱스러운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오늘은 정신차리고 코딩을 열심히 했습니다. 로직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서 구현했어요. 대충 돌려놓고 퇴근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속도가 너무 느려서 퇴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상 시간이 50시간에 달했어요. 이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다 Clickhouse를 써보기로 결정했습니다. Git Repository의 기록을 tsv 형태로 추출하는 부분을 기능으로 구현해뒀더라고요. Clickhouse 데이터베이스에 올려서 쿼리하는데 쓰라고. Clickhouse는 파이썬으로 50시간 걸리던 작업을 3초만에 해냈습니다. 이거다 싶었어요. 역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쿼리는 데이터베이스에게.

매주 있던 수요일 아침 미팅이 없어졌어요. 중복되는 일정이었어서 없어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래간만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우유와 샌드위치를 먹고 출근했습니다.

전 직장에서 개인 메일로 홈커밍 초청이 왔었는데, 갈까 말까 하다가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목요일이라서 날짜도 애매하고, 이미 이번달에 서울을 한번 갔다온 터라 교통비도 부담이 되어서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친구가 재워준다고 해서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보고 회사 사람들 얼굴도 볼 겸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RSVP 보냈는데, 답장으로 혹시 인터뷰도 할 수 있냐고 여쭤보셔서 흔쾌히 응했습니다. 오래간만에 회사 사람들 볼 생각에 기대가 됩니다.

어제 Clickhouse의 힘을 확인하고 지금까지 짠게 의미 없나 생각했지만, Clickhouse만으로는 원하는 데이터셋을 구성할 수 없어서 결국엔 짜둔 것을 또 쓰게 되더라고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데이터 후처리 파이프라인을 완성했어요. 처음에는 택도 없이 오래걸렸는데, 병렬화를 적용시켜서 실행시간을 30분대로 단축시켰습니다.

기계학습 어싸인 점수가 나왔습니다. 낮에는 분명 만점이었는데 저녁에 다시 확인해보니 4점이 감점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만점일리 없는데 생각하고는 있었어요. 조교님이 내 답안지를 보고 채점하셨나 싶었습니다.

2024. 03. 13.,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3. 13.,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오랜만에 태우와 러닝을 했습니다. 같이 뛴 건 6일만인가 싶어요. 5km로 거리를 늘린 후로 4km를 처음 뛸 때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힘든데 뿌듯하고 그래요.

러닝이 끝나고서는 태우 방에서 이것저것 작업했습니다. 동아리 홈페이지를 수정하고 배포했어요. 데이터 후처리 파이프라인에서 터지는 부분을 핸들링했어요. 오늘 나온 과제 5문제 중 2문제를 풀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IRP를 현금성 자산으로만 채워두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투자 상품을 이것저것 구성했습니다.

1교시는 일찍 마치고 2교시는 휴강했어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 없습니다. 편의점에서 아점으로 우유와 두부를 가서 동아리방에 가는 길에 같이 일하던 카페 매니저 분을 마주쳤어요. 요즘 얼굴 되게 좋아졌다고, 피부도 좋아졌다면서 관리 받냐고 물어보습니다. 저번주에 샛별도 나보고 안색이 좋아졌다고 그랬는데 정말 좋아졌나봐요.

어제 만들어둔 데이터셋을 다른 데이터셋으로 매핑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느려서 우울했지만 멀티프로세싱으로 또 극복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연구실 서버가 64코어라서, 최대한 모든 코어를 갈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능을 구현할 때 작은 함수들을 먼저 만든 다음에 map을 통해 해당 함수들을 조합해서 기능을 완성한 후, map 함수를 프로세스 풀의 map으로 바꿔치기 하는 방식으로 병렬화를 달성하고 있어요. 가장 스트레스를 덜 받는 접근인 것 같습니다.

2024. 03. 14.,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베라보 이번 특선은 똠얌라멘이었습니다. 최근에 친구가 태국에 간 걸 보고 똠얌꿍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국물을 먼저 한 모금 했을 때에는 칼칼한 맛이 커서 기대한 똠얌 맛과 약간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수를 곁들여서 한입 했을 때 정말 완벽해졌습니다. 고수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신 것 같았어요. 똠얌 특유의 맛이 육수에 쫀득하게 들어서 정말 맛있는 라멘을 먹었습니다.

동아리 리크루팅 기간이라 매주 오픈동방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웹 문제 질문을 한 친구가 있다고 해서 오늘 가봤는데 새내기가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요즘 문제를 푸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아서 뉴비들을 잘 뽑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오지 않을 새내기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다음주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다음주 동아리 오픈 세미나를 제가 담당하게 되었거든요. 원래 쓰던 슬라이드를 그대로 쓰려고 하다가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약간 후회됩니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학교의 모든 가로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짧은 주기로 반복했어요. 무서웠습니다.

2024. 03. 1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금요일 아침에는 랩 세미나가 있어요. 우리 연구실은 한 세미나에 페이퍼를 2개씩 다룹니다. 이번 세미나는 동기 분이 두 페이퍼를 적절히 볶아서 준비하셨더라고요. 저 말고 다른 두 분은 연구 분야가 머신러닝에 훨씬 가까워서 세미나 때 다루는 페이퍼마다 수식이 많이 튀어나오는데 나에게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다른 분들은 보고 척척 이해하시는 것 같던데 부러워요.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학교 앞 가정의학과가 1시부터 점심시간이라 그 전에 도착해야했어요. 12시 반에 도착했지만 사람이 없었어서 진료를 빠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명치가 죽을듯이 아파요. 한 3일 되었습니다.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어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갈비뼈를 꾹꾹 눌러보시더니 평소에 자세가 많이 구부정하냐고 물어보셨어요. 냅다 해부학 책을 펼쳐서 갈비뼈에 대해 알려주시더니 연골과 뼈의 이음새에 염증이 생긴 거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자세가 구부정하면 무게가 쏠려서 염증이 생길 수 있대요. 정말 상상도 못한 이유였습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결국에는 단순 염증인거라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았습니다.

여기 선생님은 아픈 원인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참 좋아요. 공대생 맞춤 진료라고나 할까요. 근데 어떻게 저 설명만 듣고 바로 이 희한한 염증을 알아채셨는지. 가정의학과에서 말하는 ‘1차 처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2024. 03. 14.,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2번길 3.

가정초밥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똠얌라멘 한번 더 먹고 싶어서 베라보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사만 드리고 가정초밥으로 갔어요. 맛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다른 병원 예약도 있었는데, 2시 반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뜨더라고요. 날씨가 좋아서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팟캐스트를 들을면서 걸어갔는데, 40분 정도 걸렸어요.

2024. 03. 14.

5시에는 아이폰 병원 예약도 있었습니다. 아이폰 망원 렌즈 안쪽에 뭔가 들어갔는지 사진에 이상한 점이 찍히더라고요. 갔는데 부품이 없어서 다음주에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서울 갈 때 애플 스토어에서 처리할까 싶었는데 그냥 포항에서 받기로 했어요. 다음주에 연락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학교 주변 동네 밖으로 잘 나가지 않다보니 포항 버스에 익숙하지 않아요. 학교로 가는 버스인줄 알고 탔는데 아니더라고요. 경주에 갈 뻔 했지만 다행히 유강에서 내렸습니다.

2024. 03. 1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3. 1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태우와 5km 러닝을 했고, 27000걸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024. 03. 17.,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거하게 늦잠 잤습니다. 2시께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다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주에 진행할 오픈 세미나 덱을 오늘은 완성해야만 했습니다. 씻고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방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특별히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 있는 날은 아니었지만 점프 수트를 입어봤어요. 봄이 가기 전에 봄 옷들을 얼른 얼른 입어둬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아리방에 도착해서는 4시부터 9시까지 쉬지 않고 슬라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의자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어요. 기존에 있던 세미나 슬라이드를 모두 고치면서, 다른 슬라이드에 있던 내용을 합쳤습니다. 사실 언젠가 해뒀어야 하는 일인데,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드디어 전부 수정을 해냈습니다. 마음의 짐을 덜어서 후련해졌습니다. 총 104 페이지가 나왔어요. 이걸 또 세미나 형식으로 전달할 생각에 아찔하긴 한데 그건 다음주의 민재가 잘 해내지 않을까요.

정이 깊을수록 상심이 크고 아름다운 꿈은 쉽게 깨는 법

“정이 깊을수록 상심이 크고 아름다운 꿈은 쉽게 깨는 법.”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 인용한 소설 ‘화월흔’의 한 구절입니다. 넘치는 정에 대해 경고하는 구절로 들리지 않았어요. 상심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습니다. 정을 떼지 않으면서 상심의 공포를 회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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